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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좌산(鳳座山 ; 626m)의 유래

    서숲

    봉좌산(626m)은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와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경계에 위치하며, 봉좌산 정상에는 봉좌암(鳳座岩)이라는 봉황새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천지가 개벽할 당시에 이지역이 물이 다 차버리자 봉황이 봉좌암 바위에 앉아서 물난리를 피했다 하여 봉좌산이라 전해온다.

    바위의 모양이 기계천쪽 멀리서보면 선비들이 쓰는 탕건같이 생겼다하여 봉좌암을 탕건바위라고도 부른다.

    좌측으로 운주산과 우측으로 어래산이 있어 기계면 전체를 품고 있으며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에서 보면 기계천에서 봉황이 날개를 쫙 펴고 힘차게 비상하는 형상을 하고 좌측으로 앉았다하여 봉좌산이라 한다. 봉좌산 아래 넓은 들판과 기계천이 나란히 흐르고 국도31호선과 대·포고속도로 서포항 IC에서 10분 거리에 있으며 “나무꾼들의 이야기가 흐르는 봉좌산” 산림청 국가 숲길조성사업에 선정되어 20억을 투자하여 등산로와 명품숲길이 조성되어있어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다.

    봉좌산

    1. 봉강재

    고려태조 왕건이 고려를 창건할 때 개국공신인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장군 묘소와 제실이 있는곳으로 후손인 고려말 경주부윤 윤광소가 임시관청을 두고 봉강재를 세워 태사공 위패를 모시고 자손들의 충효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1957년 개교한 기남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이 부족하여 봉강재에서 공부를 하였고, 등하교 길에 봉장재 주변 소나무에 황새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등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개국공신을 기리기 위해 후손(윤광소)이 지은 제실이다.

    2. 나뭇재

    치동,선래,관평,이동 주민들이 봉좌산을 중심으로 땔감이나 풀베기를 해서 마을로 내려오기 전에 나무꾼들이 함께 모여 휴식하던 쉼터광장이었으며 성황당 나무가 재를 지키고 있어 무사히 재를 넘을 수 있도록 행운을 비는 마음으로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으로 돌을 던지고 가는 풍습이 있으며 인근 마을에 머슴들이 주인의 굴레를 벗어나 나무따먹기, 기마전, 닭싸움, 씨름, 꼴치기 등을 하며 애환을 달래던 곳으로 영천과 기계를 이어주는 잿길이었으며 지금으로는 만남의 광장과 같은 곳이었다.

    3. 말(斗)바위(옛날곡식을 되거나 계량저울형태 사각나무통)

    옛날 치동(동쪽마을)에 말바위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천석군이 살았는데 어느날 대사가 천석군 집에 방문하자 며느리 되는 사람이 대사에게 아뢰기를 어떻게 하면 우리집에(거지가 꼬리를 물고 들어와) 손님이 적게 오게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으니 대사가 서쪽나뭇재고개에 있는 말바위(복바위)를 고개넘어(이동쪽)로 넘기라고 하여 넘기니 학 2마리가 서쪽마을(이동)로 날아갔고 복바위의 기능을 잃어 살림이 기울어져 손님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에 가세가 기울자 다시 동민이 나서 제자리로 가져와 현 위치를 하고 있으나 그 집은 가세가 흥하지 못하였으나 마을은 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4. 보리수 군락지

    줄기는 회색이고 가지는 붉은 갈색이다.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인데 뒷면에 은색 비늘이 있다. 꽃잎은 1~3개씩 잎겨드랑이에 누런 흰색으로 피고 열매는 팥알만한 동글동글한 장과로 초가을에 붉게 물들어 어려운 시절 학교를 다니면서 배가고파 망게 와 까치밥을 따먹으며 자란 추억과 가을이 되면 빨간 열매가 달고 맛이 있어 따먹으려면 가시가 있어 손에 피가 나는데도 따먹곤 했던 나무로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변함없이 진리를 깨달아 불도를 이루었다하여 부처님이 깨닳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5. 참샘이

    치동마을에서 봉좌산으로 겨울엔 땔감나무와 여름철에 풀을 베어서 농사를 짓든 시기에 나무꾼들이 쉬는 곳에 여름인데도 얼음이 서려있어 그곳을 파보니 시원한 찬물이 솟아나서 조그만 간이우물을 만들게 되어 나무꾼들이 쉬는 곳이 되었다.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흐르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나와서 참으로 좋은샘(우물)이라고 하여 참샘이 우물이라 하여 겨울철에 나무꾼들과 여름철에 풀을 베러 오는 농부들이 마땅이 먹을거리가 없던시절 참샘이 우물 물을 벌꺽벌꺽 마시며 허기진 배를 채워서 동네로 내려오는 애환이 서린 곳이다. 참샘우물에서 조금내려오면 개울에서 삼월 삼짓날 참꽃이 필때 화전을하며 마을 주민들의 단합과 화합을 이루던곳으로 화전 바위가 지금도 그때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곳이다.

    봉좌산

    6. 볏가리등(곡식 볏가리 같이 생긴산봉우리)

    분옥정에서 봉좌산 정상을 향해 오르면 높은 고개 밑에 꽹지미 고개가 있는데 서로 대치하여 형산강 전투의 마지막 보루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 수많은 군인이 목숨을 잃은 곳으로 전쟁 후에도 주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가면 해골이 굴러다니는 모습을 보고 놀라곤 했다고 하며 마을뒷산에 굴을 파고 인민군이 피난처로 사용했으며 인민군 본부가 마을에 있었으며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후퇴를 할때 많은 사상자가 발생되었으며 인민군이 먹던밥을 남겨두고 후퇴를 하는바람에 국군에게 발각이 되면 인민군 밥을 해주었다는 오해를 받아 우리는 총살을 면치 못할것이라는 주민들의 생각에 밥을 감추느라 소동을 벌인 기억을 더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당시 증언을 전해준다 2011년도 유해발굴을 여러구에 유해를 발굴한바있다.

    7. 무제 제단바위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을 말하며 가뭄이 심하여 비가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는 사람을 3명 뽑아서 새벽에 목욕재게 하고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를 지내고난 후 주민들이 꾕가리를 치며 풍년이 들라고 비는 마음으로 풍악을 울리며 술병에 맑은물을 담아 솔잎을 꽃아 막고 거꾸로 들고 마을까지 비가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물을 흘리며 내려왔다고 전해지며 축관(제관)은 부정한 사람은 집에 오가지도 못하게 하여 일편단심으로 기우제를 모셨다 한다.

    8. 지겟재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와 경주시(안강읍 옥산리)를 잇는 잿길목으로 기계면 남쪽마을(봉계,고지,문성,학야,성계)에 봉좌산에 나무와 풀을 베로 오가며 지게를 받쳐놓고 쉬던 곳이라 하여 지게재로 불린다. 옛날에는 재를 넘어 옥산사람들이 기계장을 보러오던 곳으로 동자방, 학야, 옥산 등 걸어 다니는 잿길의 중심 교차로였다. 새마을 노래비를 새워 기념관으로 가는 길과 연결되며 앞으로 새마을 숲길 거리를 만들고 승마로드 트랙킹 코스로도 경사가 완만하고 100년이 넘는 육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산림욕장으로도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다. 예전에는 잔디광장으로 기남초등학교 학생들의 소풍 코스로 인기가 있었다.

    9. 마봉산정상

    마봉산은 신라때부터 말을 사육하던 곳으로 산 형상이 말모양을 하고 있어 말머리(고지리)는 말두봉이고 말 허리를 지나 엉덩이(봉계리)를 말미봉이라 부르며 마봉산 아래 들이름은 말미들이라 한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봉계리와 고지리 청년들이 정상에서 생솔잎나무에 불을 피워 연기가 하늘을 덮고 멀리 올라가기를 서로 경쟁하며 맞불을 놓고 달을 보며 각자소원을 빌고 밤에는 쥐불놀이로 한해의 액운을 달래며 민속놀이를 즐겼다. 또한 말 허리로 내려와 싸움놀이를 하던 곳으로 돌던지기와 고생네기를 즐겼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다. 옛날에 30리마다 역이 있었는데 경주시 안강 창마을과 기계 인비리에 역이 위치하여 말을 사육했는데 마봉산에 묘를쓰면은 말이 죽어 마봉산에 묘를 못 쓰게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10. 선돌뫼바위

    옛날옛적에 치동 마을에 노부부가 외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중병을 앓게 되자 아들이 약을 구하러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자 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선돌뫼 앞에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빌면서 기다리다 선체로 굳어 돌이 되어 선돌뫼 할머니 바위라 불리며 그 후 큰 구렁이가 바위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아 아들이 구렁이로 변하여 지금도 바위를 지키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구전이 전해내려 온다.

    11. 자작나무 군락지

    성산우물 갈림길에서 마봉산 방향으로 500m쯤 내려오다 보면 높이 30m 굵기가 30cm에 이르는 군락지를 발견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800m 능선양지에서 군집을 형성하고 있으나 봉좌산 200m지역에 보기 드문 자작나무 군락지다. 순백색의 수피를 가지고 있어 조경수로 좋으며 나무의 질이 좋고 벌레가 먹지 않아 건축재, 세공재, 조각재 등에 좋다. 잘 썩지 않아 합천해인사 팔만대장경, 경주천마총에 출토된 그림이 자작나무껍질이다. 특히 농촌에 농기구자루로 사용하였으며 나무가 질기고 잘 부러지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12. 참꽃군락지

    봉좌산 5부 능선부터 간간히 보이는 진달래꽃은 7부 능선을 오르면 온통 참꽃 군락지로 산악인을 맞이한다. 춥고 습하며 바람이 부는 곳에서 잘 자라는 진달래는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야 꽃망울이 생기는 식물의 이치를 가르쳐주는 꽃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데 꽃은 삿갓모양을 뒤집어 놓은 것같이 생긴 통꽃이며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고 열 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로 이루어져있다. 5월 초경에 만발하고 꽃이 아름다워 관상가치가 있고 삼월삼짇날에는 참꽃으로 만든 화전을 먹으며 봄맞이를 즐기곤 했다.

    13. 세이탄(洗耳灘)

    분옥정옆 계곡 청석 돌바닥에 음각으로 새겨진 글자 세자중 ‘이탄’ 두자가 남아있다 ‘세’자는 300년 넘게 풍화되어 알아볼 수 없는 상태다 돈옹공(경주김씨)이라는 선비가 한양 성균관생원에 입격하여 진사소과 급제하여 벼슬을 하던 중 다시 대과급제 과거시험을 보려고 준비 중에 있었는데 부친이 돌아가시자 공부를 그만두고 내려와 삼년상(시묘살이)을 치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대과급제 공부를 하려던 차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또 삼년상을 치르고 나니 망국적인 당쟁과 권욕으로 얼룩진 당시의 사회상에 염증을 느끼고 결연한 심정으로 벼슬길을 체념하고 고심 끝에 한양서 당파싸움 하는 것과 부패한 세상과 결별을 하고 과거시험공부를 접고 낙향하여 현 분옥정 위치에 자리를 잡아 세상을 등지고 살며 후학 지도에 전념하였다 한양에서 조정의 더러운 소리(당파싸움)를 이목골 여울에 씻어버리려고 흘러가는 맑은 물에 귀를 씻었다 하여 씻을 ‘洗’ 귀 ‘耳’ 여울 ‘灘’ 이라 글자를 세기고 조선조 숙종 때 고향의 후학지도에 전념하였다.

    14. 바둑바위(무제터)

    이곳은 옛날에 주민들이 가뭄이 심할 때 가뭄해소를 위해 기우제를 지내던 장소다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나면 가뭄이 해소되고 한해 농사를 풍년이 들게 하여 가뭄이 들 때면 자주 이용하던 곳이다.

    15. 성산전설

    성산에 관한 전설인데 기계면 문성리 뒷산이 장방산 이고 장방산 에서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성산이라는 산이 있다. 성산이라고 지명이 붙은 것은 그 산에 성터가 있기 때문이다. 성터는 지금도 남아 있다. 옛날에는 나지막한 성이었는데 지금은 성이 허물어지고 성터도 나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성이 있었다.성산 정상에 옛날에 유명한 사람이 저택을 짓고 살았던 흔적이 있다고 한다. 집을 짓고 우물이 필요해서 처음에는 그 정상에 올라가는 길목 중간에 작은 우물이라고 했고 그정상에 올라가면 집터 내에 우물이 있는데 그 우물을 큰 우물이라고 했다. 큰 우물이 약60여년전에 그 산에 놀러간다든짖 풀을 베러 간다든지 하면 우물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거기에 사람이 빠지면 지금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 앞 부족강( 지금의 형산강)에 올라온다는 전설이 있었고 그 우물에는 수백년 묵은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 우물을 들여다보는 자체를 무서워했다. 실제 그 정상에는 약 200여평 되는 집터가 있고 깨어진 기와조각과 주춧돌 등이 흩어져 있다. 지금은 현내리 월성이씨들 산소가 들어서면서 흔적이 많이 소실되었다. 산에는 신라 때인지, 고려 때인지 몰라도 당시 세력가에 있던 사람이 조정에서 일하다가 좋지 못한 일로 밀려나 산 정상에 상성을 쌓고 살았다. 한번은 관군이 이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서 안강에서 들어오는 기계면 내단리인 달성까지 들어와서 산을 쳐다보니까 온산이 하얗게 보였다. ' 저기 병사들이 참 많구나! 우리 군사로는 이길 수 없겟다.' 하며 철수 했다. 성산 산에 하얗게 보인 것은 관군이 저택 주민을 잡으러 올것을 예측하고 집에있는 옷가지들을 나뭇가지에 수백벌 걸어놓고서 눈을 속였다는 이야기다

    장방산 단혈전설 이야기

    성산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문성리 뒷산 이름이 장방산이고 그 중간의 능선이 급경사인데 경사 하단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 지형이 있는데 그런 지형을 옛날 풍수지리학상 말 잔등형이라고 했다. 말잔등형이라는 것은 말이 어깨에서 경사진 곳을 내려와 다시 말머리 쪽으로 뻗어있는 그 형상이 굉장히 힘이 있어 그 앞에 문성리가 길지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성에는 앞으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다 했고 임진왜란 때 일본이 우리 조선 땅을 침범했었고 우리 조선군은 힘이 없다보니 조선의 대국인 명나라에 지원 요청을 해서 명나라에서 지원군을 파견했고 그 지원군 사령관이 이여송장군이었다. 이여송장군이 순수한 중국한족 출신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명나라로 건너가서 성장하면서 무예를 닦고 그 무예가 출중해서 무장으로 출세를 해 결국은 명나라 지원군 사령관으로 일본군과 싸워서 일본군이 패망하고 명나라로 다시 돌아가게 됐을 때에 이 사람이 무슨 객기가 발동했는지는 몰라도 조선팔도에 유명한 풍수가를 다 불러다놓고 풍수가들한테 내가 이 조선땅에서 태어나 중국까지 가서 이렇게 큰 장군이 되어서 왔는데 앞으로 조선 땅에서 나 같은 장군이 도 날수 있는 지형이 몇군데나 있느냐고 물었다. 풍수가들이 돌아다니면서 본 견해를 취합하여 8군데가 있다고 말하자 병졸들을 보내 풍수가들이 가르쳐준 위치가 쇠말뚝을 쳐서 단혈을 했는데 그중에 한곳이 바로 장방산 말잔등형 지점이었다. 그 당시 쇠말뚝을 직접 보았다고 하는 어르신도 있고, 실제 쇠말뚝을 박았다는 지점에 가면 움푹 파인 흔적이 있는느데 그 높이가 약 6~7M 이상이다. 토질 자체가 마사토이고 비스듬한 산비탈이라서 쇠말뚝을 많이 박아서 흠집이 나고 비가 오면 더욱 파였다한다.

    16. 간들바위

    간들바위라 명칭이 된 것은 곳 떨어질 것같이 간들거리는(흔들거리는)것이 간들간들 거린다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옛날 한 풍수가 이 바위 밑에 묘를 쓰고 바위가 묘쪽으로 굴러 떨어지면 후손이 번창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묘를 ? 바위가 떨어지지 않아 그 자손들이 어렵다고 전해진다.

    17. 6.25(기계-안강전투) 전적기념비

    1950년 8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40여 일간 기계-안강전투는 국군 제1군단 수도 사단 25연대 1대대, 2대대와 북한인민군 제12사단 766유격부대가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 북한군 12사단 지휘체계가 와해돼 기계부근의 북한군은 대부분 격멸되고 일부 병력만 포위망을 뚫고 북쪽으로 후퇴했다. 기계 봉좌산 탈환전에 국군 수도 사단은 북한군 1245명을 사살하고 무기와 탄약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형산강 전투의 마지막보루로 치열한 전적지로 국군의 승리와 북한인민군의 영혼을 달래는 6.25전적기념비를 세웠다.

    18. 꽹짐이고개

    옛날에는 천수답으로 농사를 짓던 시기에는 여름철에 심한 가뭄이 들면 하늘에 있는 꽝철이가 분노해서 비가오지 않는다고 믿고 봉좌산 바위 밑에서 무제를 지내고 내려올 때 봉계동 청년들이 기다리가 꽹과리를 치면서 흥을 돋구고 한판 걸판지게 놀고 무제를 지낸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밤새도록 꽹과리를 치고 동네를 돌아 온 후에 비가 내렸다고 하여 꽹짐이고개라 한다.

    봉좌산

    14. 바둑바위(무제터)

    • 1.태사길-학교에서 봉강제 둘레길
    • 2.윤신달 장군길-봉강제에서 나뭇재 까지
    • 3.나뭇재길-나뭇재에서 깔딱고개까지
    • 4.깔딱고개길-깔딱고개에서 참새미 삼거리까지
    • 5.참새미길-참새미에서 꽹짐이 고갯밑삼거리까지
    • 6.분옥정길-분옥정에서 꽹짐이 고갯밑삼거리까지
    • 7.세이탄길-분옥정에서 동자방 진입로까지
    • 8.큰서당길-동자방진입로에서 마봉산 입구까지(남덕재길)
    • 9.꿀밤길-치동마을뒤에서 선돌뫼까지
    • 10.선돌뫼길-선돌바위에서 마봉산 정상까지
    • 11.말미봉길-말미봉정상에서 마봉산허리까지
    • 12.학파공길-마봉산허리에서 외말고개 입구까지(호조참의길)
    • 13.일암공길-외말고갯길입구에서 가천 서씨 산봉우리까지(가선대부길)
    • 14.자작나무길-가천 서씨 산봉우리에서 성산삼거리까지
    • 15.성산우물길-성산 삼거리에서 성산산불감시탑까지
    • 16.새마을 전망대길-성산산불감시탑에서 새마을발상지 기념관까지
    • 17.하봉골길-나뭇재 삼거리에서 하봉골 치동까지
    • 18.보리수길-나뭇재에서 너영지(치동)까지(똥굼재길)
    • 19.꽹짐이길-꽹짐이고갯밑 삼거리에서 기우제 제단까지(꽹지미길)
    • 20.탕건바위길-봉좌산정상에서 봉좌산전망대까지
    • 21.참꽃군락지길-참새미에서 정상 삼거리일원(봉좌산 칠부 능선부터 정상까지)
    • 22.봉좌암길-봉좌산정상에서 지게재 까지
    • 23.소통의길-지게재 네거리에서 성산삼거리까지(키스하는길)
    • 24.고척길-고지1리 마을에서 마봉산허리까지(고지뱅이길)
    • 25.말두봉길-마봉산허리에서 말두봉정상까지
    • 26.와지고갯길-고지2리에서 마봉산 입구까지(외말고갯길)
    • 27.용말바위길-고지2리에서 용말바위까지
    • 28.딸밭골 길-용말바위에서 성산삼거리까지
    • 29.새마을 지겟길-문성 새마을발상지기념관에서 성산삼거리까지